[매경포럼] 도이치뱅크에게 告함

비록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최소한의 사실만 갖고 판단해도 그렇다. 주식 사기가 노상강도보다 1만배나 더 나쁜 이유는 신뢰를 악용해 남의 돈을 훔치면서 본인은 아무런 물리적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단순히 실정법을 위반했는지를 기준으로 재단할 문제가 아니다.
대형 글로벌 금융회사에는 그래서 조직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나름의 내부 규율이 있다. 그게 `헤드라인 룰(Headline Rule)`이다. “당신의 행동이 신문에 나오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도이치뱅크가 옵션만기일 선물과 연계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할 때 필시 본인들의 행동이 신문에 나오지 않길 바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선 안 될 행동을 했다. 이게 증권시장을 지배하는 기본 원칙이다.
애널리스트들이 선망하는 자격증이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이다. 3년 코스인데 3년 내리 윤리과목을 테스트한다. 회계나 자산관리 등 얼핏 중요해 보이는 과목들은 2년만 하는 데 반해 윤리는 주야창천 공부한다. 내용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반복 학습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당신은 홍길동증권회사의 영업사원이다. 어느 날 복도를 가다가 CEO가 `성춘향증권을 인수하겠다`고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 아직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마침 고객으로부터 좋은 종목을 추천해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당신은 `성춘향증권을 사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말해선 안 된다`가 정답이다. 내부정보 유출에 해당하는지 묻기 이전에 금융 철학에 관련된 문제다. 당신 눈앞에 있는 고객에게는 이익을 주는 일이나 다른 다수의 고객에겐 배신행위이기 때문이다. 금융의 기본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본인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건 용서받을 수 없는 패악이다.
도이치뱅크가 작년 11월 11일 한 짓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행위였다. 증시에 참여하는 수많은 투자자를 배신했고 그들의 신뢰를 저버린 행동이었다. 그날 오후 2시 19분 50초부터 2시 49분 59초까지 도이치뱅크 홍콩지점은 선물과 연계된 파생상품 매매를 치밀하게 진행시켰다. 금융감독원은 이 사건을 조사한 후 사전에 계획했고(plan), 보고했고(report), 지시했다(instruct)고 결론내렸다. 한국의 증권지점이 적극적인 조력자였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나는 감독당국의 조사 결과가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과 어쩌면 법정에서 무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이치뱅크가 금융시장에서 해선 안 될 일을 했다는 믿음엔 변함이 없다.
그들이 글로벌 투자은행임을 자부한다면 공개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사법적 잣대로 죄가 성립되든 안 되든 스스로 관련자에 대해 최고의 문책을 단행해야 옳다. 일부 영업정지와 같은 감독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에 안도할 게 아니라 스스로 문을 닫고 한국에서 철수하는 게 도리다. 무엇보다도 떳떳하게 한국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
9개월이나 지난 일을 왜 끄집어내느냐고? 9개월이 아니라 9년이 걸려도 규명할 건 규명하고 응징할 건 응징해야 한다. 도이치뱅크는 사건 발발 이후 아직까지 침묵으로 일관한다. 검찰의 관련자 소환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 금융리더로서 자격상실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서 불공정거래에 철퇴를 가하겠다고 천명했다. 시장에 참여하는 대중 모두가 스스로 공정하게 대우받는다는 믿음이 없다면 자본시장은 미래가 없다. 이걸 지키는 게 금융당국의 첫 번째 임무다. 도이치뱅크의 분탕질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손현덕 부국장 대우ㆍ증권부장 겸 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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